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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민원인 3,000만 원 배상 판결은 시작일 뿐

최준호 / 전북타임스 대표
- 차기 교육감의 제1과제는 ‘법적 안전망’ 구축이다


교육의 전당이어야 할 학교가 어느덧 ‘민원의 전쟁터’로 변질된 지 오래다. 그 최전방에서 학부모의 폭언과 협박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교감들이 무너지고 있다. 평교사는 교권 보호 뒤로 숨고, 교육 당국은 행정적 잣대만 들이대는 사이, 중간 관리자라는 이름의 ‘교감’은 어느덧 학교의 방패가 아닌, 모든 비난과 화살을 받아내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렸다. 최근 전북 내 초등학교에서 들려오는 교감들의 정신과 치료 소식과 승진 기피 현상은 전북 교육의 안전망이 통째로 붕괴되고 있음을 알리는 서글픈 경고음이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 속에서 최근 들려온 법원의 판결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교사에게 지속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며 괴롭힌 학부모에게 법원이 3,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본지는 이 판결을 적극 환영한다. 이는 그동안 ‘교육적 이해’라는 미명 하에 묵인되어온 악의적인 괴롭힘이 명백한 ‘범죄 행위’임을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사건이다. “내 아이의 기분”을 앞세워 타인의 인권과 교육권을 짓밟는 행위에는 엄중한 법적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준 지극히 상식적인 결과다.

하지만 사법부의 판결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소송은 길고 고통스러우며, 그 과정에서 교육자의 영혼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전히 학교 현장에 남아 있다. 현재 전북의 민원 대응 시스템은 철저히 학교 단위에 머물러 있다. 악성 민원이 발생하면 학교장과 교감이 이를 ‘개인의 역량’으로 막아내야 한다. 민원인이 학교로 쳐들어와 폭언을 퍼부을 때, 교감은 교육청의 보호가 아니라 자신의 인내심에 기대어 버텨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교육 당국의 무책임한 방기다. 교감은 학교의 만능 방패가 아니라, 함께 보호받아야 할 교육자다. 악성 민원을 관리자 한 명의 수완으로 해결하라는 식의 구조는 사실상 교감을 사지로 모는 행위다. 이제 곧 전북 교육의 새로운 수장을 뽑는 선거가 다가온다. 차기 교육감은 민원 대응 체계를 학교라는 담장 안에 가둬둘 것이 아니라, 즉각 ‘교육지원청’ 단위로 격상시켜야 한다. 학교는 오직 교육에만 전념하고, 법적 분쟁이나 악성 민원은 교육지원청 소속 전문 변호사와 수사관급 인력이 배치된 ‘통합민원센터’가 전담하는 시스템으로 이원화해야 한다.

또한, 이번 3,000만 원 판결을 계기로 전북의 새로운 교육 행정은 악성 민원인에 대한 강력한 법적 대응 가이드라인을 ‘실천적 원칙’으로 확립해야 한다. 단순히 “고소 대행을 돕겠다”는 수준을 넘어, 교육청이 직접 고발 주체가 되어 교원을 보호하는 적극 행정을 펼쳐야 한다. 악성 민원인이 학교 문을 넘기 전, 교육청의 법적 보호망이 먼저 작동하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피해자는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

방패가 부서지면 그 뒤에 서 있는 아이들도 함께 무너진다. 유능한 교사들이 교감이 되기를 두려워하고, 교감들이 명예퇴직을 꿈꾸는 교단에 어떤 미래가 있겠는가. 이제 서거석 교육감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리더십을 기다리는 전북 교육계에 가장 절실한 것은 '말뿐인 위로'가 아닌 '제도적 방패'다.

6월 3일 지방선거를 통해 전북 교육의 수장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이 비명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교감들에게 비겁한 희생을 강요하지 마라. 차기 교육감이 교감의 든든한 법적·제도적 안전망이 되어줄 때, 비로소 전북 교육의 무너진 자존심도 다시 세워질 수 있다. 전북의 교육 미래는 관리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결단력 있는 행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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