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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공동(空洞), 텅 빈 공동 위로 예술이 깨어나다

익산 황등석산,산업의 궤적에서 감각의 성소로
김대동 황등석산 본부장

한 세기 동안 돌을 깨고 깎아내던 거친 노동의 포효가 잦아든 자리, 그 깊고 고요한 수직의 공간에 비로소 예술의 숨결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전북 익산시 황등면, 지표 아래 이 거대한 '지하의 콜로세움'은 이제 산업의 유산을 넘어 감각의 영토로 탈바꿈 중이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대신 시간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 이 거대한 석조 서사를 지휘하는 김대동 본부장을 만나, 돌 속에 잠들어 있던 이야기가 어떻게 현대의 감각과 조우하며 새로운 문화를 빚어내고 있는지 그 내밀한 여정을 들여다보았다.

세 번의 고동, 대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다
황등산업(주) 김종철 대표가 김대동 본부장을 찾아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세기 동안 살점을 내어준 석산(石山)에 대한 미안함이자, 그 거대한 공동(空洞)을 어떻게든 '삶의 자리'로 되돌려놓겠다는 간절한 고백이었다.

"처음은 김종철 대표가 세 번을 찾아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김대동 본부장은 그날의 만남을 '간절한 질문'으로 기억한다. 대개의 복구는 파헤쳐진 땅을 흙으로 덮어 상처를 가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달랐다. 오랜 시간 공들여 형성된 독특한 수직의 미학, 그 거친 석면(石面)의 가치를 매몰시키는 것은 대지가 품은 시간을 통째로 버리는 일이라 믿었다.

그 확고한 의지는 김대동 본부장의 예술적 통찰과 만났다. 석산의 상처를 지워야 할 과오가 아닌,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예술의 창의 공간'으로 재정의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산업의 언어에서 문화예술의 언어로 서서히 옮겨갔고, 마침내 지하 수십 미터 아래 잠들어 있던 적막을 깨우는 장기 프로젝트의 첫 씨앗이 뿌려졌다. 그것은 석산의 시간을 다시 읽어내는 위대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자리에 지금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복구란 지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
프로젝트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맞닥뜨린 물음은 '복구'의 의미였다. 기존의 복구는 원상 회복을 뜻했다. 채굴로 훼손된 땅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제안한 방향은 달랐다. 복구를 원상복구 복원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를 보존하고 그것을 통해 문화예술공간으로 재창출하는 과정으로 재정의했다.

Q. 프로젝트의 방향을 어떻게 잡으셨나요?
김대동 본부장 "답은 '드러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석산을 재생한다고 해서 그 위에 무언가를 새로 얹는 데서 해법을 찾고 싶지 않았어요. 이미 이곳에는 한 세기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돌을 캐던 흔적, 절개면의 결, 원형으로 파내려 간 구조 자체가 하나의 서사였거든요. 인간이 만들어낸 산업의 흔적이 시간이 지나 자연처럼 보이게 되는 순간, 그 장면을 어떻게 훼손하지 않고 보여줄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Q. 해외 사례를 많이 살펴보셨다고 들었습니다.
김대동 본부장 "캐나다의 부차드 가든, 프랑스 프로방스의 '빛의 채석장', 영국의 에덴 프로젝트, 오스트리아 빈의 오페라극장 석산, 중국 상하이의 지하석산 호텔, 일본 나오시마까지 직접 발로 뛰며 살폈습니다. 나라마다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했어요. 성공한 사례들은 하나같이 훼손된 공간을 지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공간이 품은 시간을 존중하고, 문화와 예술을 통해 새롭게 읽는 방법을 제안했을 뿐이었죠. 황등석산도 그 방향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백제 석공의 손끝에서 국회의사당, 청와대 영빈관 13m 기둥까지
황등석이 걸어온 시간은 길고 묵직하다. 삼국시대 백제 석공 아사달의 설화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고장 돌을 다루는 기술과 미감은 오랜 세월 쌓이고 다듬어졌다. 황등석산 인근의 석불사에 모셔진 '연동리석조여래좌상'은 불신의 옷주름과 광배의 구름무늬가 어우러진 아름다움으로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부처님 역시 황등석산 인근의 돌에서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돌 속에 부처를 새기는 행위, 그것이 이 땅 석공들의 오랜 언어였다. 근대에 이르러 황등석은 산업의 언어로 호명됐다. 한 덩이의 화강암이 국회의사당의 기둥이 되고, 대법원과 청와대 영빈관의 13미터 화강암 기둥을 받쳐 올리기까지, 돌은 오로지 규격과 강도와 효율로만 평가됐다. 캐고 옮기고 세우는 과정에서 이곳의 풍경은 기록되기보다 생략되는 쪽에 가까웠다. 돌을 캐던 자리, 먼지가 날리던 절단면, 반복되던 노동의 리듬은 언제나 결과물의 그림자에 머물렀다.

Q.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김대동 본부장 "황등석산에서 가장 먼저 체감되는 건 스케일입니다. 지하 80미터 깊이의 압도감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그 크기만큼이나 공간 안에 흐르는 고요함이에요. 원래 채석장은 소리와 진동, 먼지로 기억되는 장소잖아요.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오히려 깊은 정적입니다. 그 온도 차이가 황등석산만의 감정선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중에 제임스 터렐이 있는데 90m 아래 석산안 적막함과 오히려 따듯한 고요함속에 있으며, 제임스 터렐 작품을 보는 듯 합니다. 참고로 뮤지움 산에서 그이 작품을 느낄수 있습니다. 제1전망대는 자영의 흉터가 다시 자연으로 서서히 회귀하는 장면을 느끼게 됩니다. 사방이 유리로 열린 구조 안에서 방문객은 절벽의 깊이와 결을 그대로 마주하게 됩니다. 설명보다 체감이 먼저 오는 장소. 황등석산은 그렇게 산업의 언어에서 감각의 언어로 천천히 진행해 가고 있습니다."

70%가 2030 세대, 지금도 진행 중인 진화형 공원
개장 이후 방문객의 70%가 20~30대 젊은 세대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026년에는 연간 40만 명의 방문객이 예상될 만큼, 근대 산업유산을 재생한 공간 중에서도 그 반응의 속도가 이례적으로 뜨겁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열광은 황등석산만이 가진 '인간의 흔적과 대자연의 이중적 협업 (Collaboration)'이 만들어낸 독보적인 미학 덕분이다. 거칠게 잘려 나간 수직의 절벽과 그 사이로 스며든 빛과 바람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시각적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의 성지가 되었다. 인위적인 가공을 최소화하고 날 것 그대로의 스케일을 드러낸 공간 구성은, 설명보다 체감을 중시하고 비일상적인 오브제에서 자신만의 서사를 발견하려는 MZ세대의 감성을 정확히 관통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김대동 본부장 "2033년 까지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관광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공간을 만듭니다. 혹자는 석산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유리 잔도, 번지점프대 등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그런 관광지는 국내와 중국에 충분히 있습니다. 2026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제1전망대의 세 배 규모에 달하는 제2전망대가 조성 중입니다. 3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미디어아트와 소규모 공연, 전시가 가능한 구조입니다. 두 전망대를 잇는 산책로에는 황등석산의 역사를 보여주는 채석 장비 등 근대문화유산도 전시될 예정입니다. 장기적으로는 2033년까지 석산 전역을 문화예술공간으로 완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황등석산을 찾는 여정은 자연스럽게 황등시장으로 이어진다. 한때 3천 명에 달했던 석공들이 모여들며 탄생한 '황등비빔밥'은 돌과 노동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은 음식이다. 빨리 먹기 위해 고기 육수에 토렴한 밥에 여러 반찬을 한데 비벼 먹던 석공들의 식사 방식은 지금도 황등시장에서 3대를 이은 지역의 별미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돌을 캐던 자리, 그 돌로 세워진 건물, 그리고 돌과 함께 축적된 삶의 방식. 황등석산은 그 모든 시간을 품은 채 새로운 장을 펼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이 공간에 오게 될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김대동 본부장 "파내려 간 깊이만큼, 공간에는 비로소 문화와 예술이 스며듭니다. 떠났던 나비와 벌들이 돌아오고, 소리와 먼지가 사라진 자리에 꽃이 올라오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채워지고 있어요. 황등석산은 더 이상 무언가를 꺼내기 위한 곳이 아닙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 돌이 놓였던 자리를 굳이 찾아 내려갑니다. 기록되지 않았던 시간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서요.“

가장 낮은 곳에서 마주한, 대지의 진심
돌은 침묵하지만, 그 자리가 품은 시간은 관람객에게 수많은 말을 건넨다. 거칠게 깎여 나간 절벽의 결마다 백제 석공의 숨결과 근대 산업의 땀방울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제 황등석산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꺼내 쓰던 '채취의 시대'를 지나, 문화와 예술로 마음을 채우는 '향유의 시대'로 진입했다. 진정한 복구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 위에 새로운 시간의 꽃을 피우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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