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현재 대한민국 농촌은 그야말로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다. 전례 없는 기후 변화와 인구 감소라는 메가 트렌드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전통적인 노동 집약적 농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으며, 첨단 기술과 디지털 전환은 농가 경영의 생존을 가르는 필수 조건이 됐다.
이제 농업은 작물을 길러내어 시장에 넘기는 1차 산업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고,데이터를 통해 경영을 최적화하며,소비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첨단 융복합 산업으로의 진화 — 이것이 앞으로 전북 농업이 마주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서 전통적인 4-H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전북 농업의 세대교체를 주도하는 젊은 리더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에서 화훼 농장 ‘청운플라워’를 운영하고 있는 이강훈 전북특별자치도4-H연합회장(1990년생,35세)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하고 흙에서부터 잔뼈가 굵은 정통파 청년 농업인인 그는,스마트 팜을 활용한 기술 혁신을 넘어 대한민국 화훼 소비문화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꿈꾸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완주 봉동의 청운플라워 온실을 찾았을 때,기자를 맞이한 것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백합의 향연만이 아니었다. 화훼 산업의 고질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해 온 청년 농부의 열정,그리고 농장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와 그의 가족이 치열하게 축적해 온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온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흙에서 피워낸 데이터, ‘청운플라워’의 영리한 ICT 경영
이강훈 회장이 이끄는 청운플라워는 총 1.5ha(약 15,000㎡) 규모의 시설 하우스를 활용해 최고 품질의 백합과 튤립,프리지어 등을 생산하고 있다. 그가 일구어낸 스마트 팜 혁신의 핵심은 값비싼 장비를 들여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 위기 속에서도 안정적인 고품질 화훼를 생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밀하게 제어하고 경영비를 혁신적으로 절감하는 ‘실용적 애그테크(AgTech)’의 구현에 있다. 이강훈 대표는 “농업은 철저히 계산된 데이터와 기술이 결합했을 때 비로소 안정성을 가집니다”라고 한다.
이 회장의 확신은 지난 2022년 참여한 ‘청년농업인 경쟁력 제고사업’을 통해 뚜렷한 성과로 증명됐다. 총 사업비 50백만 원을 투입해 도입한 ‘이동식 양액재배 시스템’과 ‘스마트 ICT 제어’는 청운플라워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 이동식 재배 선반과 식물 생장 주기에 맞춘 정밀 영양 공급 체계는 노동력을 20% 절감시켰고,정밀한 난방 및 재료비 제어로 경영비 1,000만 원을 아끼는 쾌거를 이루었다. 과거 1억 5,000만 원 수준이던 매출은 스마트 시스템이 안착한 이후 2억 원을 돌파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화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강훈 회장이 이룩한 기술적 성취의 이면에는,소비자가 꽃을 대하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화훼 산업의 미래도 없다는 뼈아픈 현실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 “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오랜 편견에 던지는 질문
이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꽃은 여전히 경제 상황에 너무나 민감한 작물입니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항상 뒤로 밀리곤 하죠.사람들의 인식 속에 ‘꽃은 있어도 그만,없어도 그만인 것’이라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으니까요” 심정을 토로했다.
청운플라워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이강훈 회장의 가장 가까운 경영 파트너인 그의 부모님은 한국 화훼 시장이 가진 고질적인 한계를 이렇게 진단했다. 먹거리 공산품은 생활 필수품으로 인식되어 경기와 상관없이 소비되지만,화훼류는 사치품 혹은 특별한 날에만 찾는 일회성 소모품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 화훼 농가들은 가정의 달이나 졸업 시즌 등 특정 성수기에는 반짝 특수를 누리다가도, 비성수기나 경기 침체기가 오면 직격탄을 맞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이 회장과 그의 가족은 선진 화훼 국가들의 사례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외국은 전혀 달라요.유럽이나 일본 같은 곳을 가보면,대형 마트나 시장의 계산대 바로 옆에 항상 꽃 매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사람들이 장을 다 보고 나서 집에 가기 직전,자연스럽게 꽃 한두 송이를 뽑아서 계산대로 향하죠.일상 속에 꽃이 완벽하게 스며들어 있는 겁니다”
◆ 인터넷 직거래(D2C)로 여는 신선함의 신세계, 품질이 곧 브랜드다
“일주일에 딱 한 번, 아니 한 달에 단 두 번만이라도 주부들이 일상적으로 꽃을 사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우리 화훼 농업의 지형도가 바뀔 것입니다.겨울철 백합 같은 꽃은 관리를 조금만 잘해주면 집안에서 이주일 넘게도 싱싱하게 가거든요”
이강훈 회장은 소비자를 온실로 직접 방문하게 하고, 일상적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인터넷 직거래(D2C)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 마케팅을 적극 도입했다. 기존의 공판장 경매 중심 유통 구조는 여러 단계의 중간 도매상을 거치며 유통 마진이 붙어 소비자 가격은 비싸지고,그 사이 꽃의 신선도는 떨어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온라인 직거래는 이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소비자는 동네 꽃집이나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은 덕분에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싱싱한 꽃을 구매할 수 있고,농가는 제값을 보장받아 마진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한 저온 물류 및 택배 시스템 덕분에,오늘 청운플라워 온실에서 수확한 최고급 백합이 내일 아침이면 전국의 소비자 식탁 위에 그대로 배송된다.
특히 청운플라워의 온라인 마케팅이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철저한 ‘품질 차별화’에 있다.
이대표는 “오프라인 동네 꽃가게에서 파는 꽃들은 간혹 묶음 사이에 상품성이 조금 떨어지거나 대가 약한 것들이 섞여 들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물량은 오직 최상위 등급인 ‘A급’만 골라서 올립니다.왜냐하면 인터넷 소비 트렌드는 ‘이미지’와 ‘신뢰’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고 한다.
◆ 4-H 정신으로 연대하는 청년 농업의 미래
이강훈 회장의 시선은 자신의 농장이 거둔 성공의 결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2025년에 이어 2026년 현재 전북특별자치도4-H연합회의 회장직을 수행하며,지역 청년 농업인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장벽을 허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연대의 장을 다지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1952년 익산지방에서 전북 최초로 시작된 4-H 운동은 지(Head)·덕(Heart)·노(Hands)·체(Health)의 이념을 바탕으로 농촌 부흥의 중심추 역할을 해왔다. 이 회장은 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4-H 정신을 2026년 청년 농부들의 눈높이에 맞게 새롭게 재정의하고 있다. 고립된 환경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청년 농업인들이 서로의 재배 기술과 스마트 팜 운영 노하우, 그리고 유통 마케팅 데이터를 아낌없이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초기 자본의 장벽이나 기후 변화로 인한 기술적 시행착오는 청년 농부 혼자서 넘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벽입니다. 하지만 지자체의 청년 지원 사업을 영리하게 활용하고,4-H라는 끈끈한 네트워크 안에서 청년들이 서로 연대한다면 실패의 확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농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닙니다.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려 있는 가장 매력적인 첨단 블루오션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꽃병에 꽂힌 백합 한 송이가 주는 일상의 위로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된다. ”원 테이블, 원 플라워(One Table,One Flower)”를 외치며,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식탁 위에 매일 신선한 꽃 향기를 배달하겠다는 이강훈 회장의 야심 찬 포부는 이미 완주 봉동의 온실 밖으로 전북 농업의 미래 전체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첨단 ICT 기술과 든든한 가족의 신뢰, 그리고 확고한 품질 경영으로 대한민국 화훼 산업의 새로운 새벽을 열어가는 백합 청년 이강훈. 그가 피워낼 혁신의 다음 계절이 더욱 기다려진다.
/이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