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논’과 ‘쌀’이다.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중들에게 논은 단순히 농사를 짓는 땅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다. 소설 속 인물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토지개혁의 열망은, 결국 내 논에서 난 쌀로 내 자식의 배를 불리고 싶다는 가장 원초적인 갈망이었다.
소설의 배경인 벌교의 들녘은 소작농들의 눈물로 다져진 땅이다. 지주들에게 수탈당하면서도 흙을 놓지 못했던 농민들에게 쌀은 곧 권력이었다. 소설 속에서 쌀밥 한 그릇을 마음 편히 먹는 행위는 계급적 우월함의 상징이었고, 소작인들에게는 평생을 바쳐 도달하고 싶은 소박한 꿈이었다. 쌀 한 알에는 소설 속 민중들이 흘린 피와 땀, 그리고 더 나은 삶을 향한 집념이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쌀의 의미는 오늘날 ‘품종의 가치’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양의 확보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떤 품질의 쌀을 생산하여 농민의 소득을 보장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느냐가 핵심이 되었다. 그 중심에 전북 쌀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신동진’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신동진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은 소설 속 대지주가 가졌던 수만 석의 곡기(穀氣)보다 견고하다.
2025년 자료에 따르면, 정부 지원을 받는 RPC(미곡종합처리장) 브랜드 쌀 162개 중 신동진 품종이 83개로 압도적인 비중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전북의 주요 곡창지대에서는 신동진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브랜드가 49개에 달하고 브랜드 가치는 2조 4천억 원으로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병해충의 위협은 이 견고한 성채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2025년 말, 농림축산식품부의 보급종 중단 논의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전북자치도의 끈질긴 노력을 통해 2027년까지 정부 보급종 공급 유지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단순히 품종 하나를 지킨 것이 아니라, 소설 속 농민들이 지키고자 했던 ‘우리 지역에 맞는 우리 곡식’에 대한 주권을 지켜낸 현대적 승리라 할 수 있다. 이제 전북 쌀은 신동진의 영광을 넘어 ‘신동진1’이라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10여 차례 식미평가회에서 신동진1의 뛰어난 맛과 품질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국립식량과학원이 개발한 이 품종은 기존 신동진의 우수한 식감을 유지하면서도, 농민들을 괴롭혔던 병해충 저항성과 급변하는 기후에 견디는 내재해성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소설 속 농민들이 가뭄과 홍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하늘만 바라봐야 했다면, 오늘날의 농민들은 과학적으로 육성된 신동진1을 통해 안정적인 농가 소득 증대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전북특별자치도는 신동진1 품종이 현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국립식량과학원과 공동으로 종자 안전생산 재배 메뉴얼 개발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품종의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북 쌀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고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한 여정이다.
과거의 쌀이 죽음과 맞바꾼 ‘투쟁의 산물’이었다면, 오늘날 전북 쌀은과학 기술과 농업인의 정성이 결합된 ‘상생의 결실’이다. 2026년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고개를 숙여가는 벼 포기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시대는 변하고 품종은 진화하지만, 쌀 한 알에 담긴 농민의 진심과 그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은 결코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태백산맥』에서 벌교의 쌀은 단순한 식량을 넘어 민중의 생존과 역사의 소용돌이를 관통하는 상징이었다. 오늘날 전북특별자치도가 신동진1을 통해 도약하려는 의지는 『태백산맥』이 보여준 끈질긴 생명력의 현대적 발현이다. 우리는 이 새로운 쌀을 통해 과거의 시련을 이겨내고, 전북 쌀의 위대한 가치를 알리는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할 것이다. 신동진1이 차려낼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이 시대의 농민과 농업 관계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