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에서 연결을 끝내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벙커의 역할 재해석,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대피하고, 어디로 연결되어야 하는가?
전자음악 공연·미디어아트 전시·감각 워크숍을 통한‘머무름’의 제안
과거 1973년 전쟁에 대비해 신호를 기다리던 완산벙커는 행정·군·경의 지휘와 통신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벙커는, 사람을 숨기는 공간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연결을 끝내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그 연결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통신이었고, 생존을 위한 신호였다.
지금, 우리는 끝없이 흐르고 있다. 어떤 연결들은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내 손 안에서 끝없이 흘러내리는 피드의 영상들, 기다리지 않았음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알림, 계속해서 연결되어야 하는 피로감. 쉬지 않고 이어지는 반응과 비교,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휩쓸려가고 있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대피해야 하는가? 《Please, Place, Pulse》 는 정보 포화 시대의 신호 폭격들에 대항해, '보호' 라는 벙커의 역할을 감각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자꾸 쓸려가는 사회의 속도 속에서 스스로 머무를 수 있는 대피의 시간을 만든다. 끊임없이 요구되는 연결과 응답, 포화되는 신호들, 계속해 흘러들어오는 정보 표류 상태에서 벗어나, 필요한 신호를 다시 구별하고, 스스로 선택한 감각에 머무를 순간들을 제안한다.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나가며 감상하도록 설계된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의 흐름을 잠시 멈추어, 우리가 놓쳐오던 감각들을 다시 만나게 한다.
일시적으로 집합적인 몰입을 진행하는 레이빙, 반복되는 비트와 미디어아트가 만들어내는 공동의 몰입은, 당연스레 걸어나가야 할 것 같은 일상을 비틀어낸다. 비물질적이고 개인화된 디지털 신호들과 신체적이고 동시적인 레이빙을 통해 같은 공간, 같은 비트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들은, 너머의 신호들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마주하게 한다.
우리는 무엇과 마주할 수 있는가? 발을 땅에 딛고 멈추고 나면, 자신의 감각에서부터 뻗어나오는 신호들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도 모르는 채로 끝없이 오가는 새로운 신호들 사이에서. 잠시 닻을 내려, 머무를 자신의 맥박을 발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