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늉뿐인 게시 제도를 넘어 실효성 있는 모니터링과 표준 수가제로 전환해야
대한민국이 반려동물 가구 1,500만 시대를 맞이했지만, 전북의 15만 반려가구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고 팍팍하다. 가족과 다름없는 반려동물이 아플 때 찾아가는 동물병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깜깜이 진료비와 천차만별인 가격 구조는 도민들에게 커다란 경제적 부담을 지우고 있다. 어제 발표된 전북소비자정보센터의 실태조사 결과는 그동안 도민들이 품어온 불신과 의구심이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공공 시스템에 게시된 진료비와 실제 현장에서 청구되는 가격의 심각한 불일치, 그리고 병원별로 수직 상승하는 고무줄 가격 편차는 도민의 알 권리와 경제적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 등 공공 게시 시스템에 등록된 가격보다 실제 현장에서 지불하는 평균 진료비가 훨씬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혈액화학검사비의 실제 현장 평균 가격은 8만 9,792원으로 공시가격(7만 4,244원)보다 20.9%나 높았고, 고양이 입원비 역시 현장 평균(7만 8,000원)이 공시가(6만 2,930원)보다 23.9%나 웃돌았다. 공공시스템이 제공하는 정보가 현장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유령 정보’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병원 간 극심한 가격 차이다. 같은 혈액화학검사임에도 병원에 따라 최대 12.5배의 금액 차이가 발생했으며, 고양이 입원비는 최저 2만 원에서 최고 20만 원까지 무려 10배의 편차를 보였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가격 왜곡 현상은 단순히 개별 병원의 영업 자율성이라는 핑계로 방치될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정부가 소비자의 정보 접근성과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며 ‘진료비 게시 의무화’를 도입했지만, 행정 당국의 사후 관리와 모니터링이 부실한 틈을 타 제도 자체가 요식 행위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도민들은 공시가를 믿고 병원을 찾았다가 현장에서 20% 이상 부풀려진 진료비 영수증을 받아 들고도 울며 겨자 먹기로 결제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별로 지원하는 반려동물 의료 복지 사업 또한 시·군에 따라 혜택과 수준이 제각각이어서, 전북 내에서도 내가 사는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차별을 받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제는 시늉뿐인 가격 표시제 뒤에 숨어 눈속임을 이어가는 부정한 행태를 끊어내야 한다. 행정 당국은 공시가격과 현장 가격의 간극을 줄이고 도민들이 한눈에 객관적인 진료비를 비교·검증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즉각 구축해야 한다. 거짓 공시나 과도한 기만적 가격 책정에 대해서는 강력한 행정 지도와 제재가 따라야 마땅하다. 또한 차기 지방정부와 자치단체장, 그리고 지역 정치권 역시 선거철에만 생색을 내는 구색 맞추기식 반려동물 공약을 당장 던져버려야 한다. 시·군별 의료 지원 격차를 해소하고, 과도한 진료비 폭리를 막을 수 있는 '동물병원 표준 수가제'와 '권장 진료비 가이드라인' 도입 등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대안 마련에 즉각 나서야 한다.
반려동물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닌 한 가족의 생명이며, 반려가구의 복지는 곧 도민 삶의 질과 직결된다. 아픈 가족을 담보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경제적 고통을 강요하는 구조를 방치하는 것은 행정의 직무유기다. 도민들의 현명한 소비 주권과 알 권리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전북도와 각 지자체는 동물병원 진료비 투명화와 공정한 의료 환경 조성을 위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 도민들의 참았던 분노와 서글픈 눈물에 정치가 책임 있는 대안으로 응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