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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짧은 고추잠자리

배해수 / 무형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고고인류학 박사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고추잠자리들이 푸른 하늘을 날고 있다. 전깃줄에는 제비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때로는 무리를 지어 하늘로 솟구쳤다가 다시 내려앉는다. 머지않아 먼 남쪽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듯하다. 여름 내내 익숙했던 제비들이 사라지면 그 빈 하늘을 고추잠자리들이 채울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는 잠자리가 있다. 꼬리처럼 길게 뻗어 있어야 할 배가 유난히 짧아 보이는 녀석들이다. 처음에는 상처를 입었거나 우연히 생긴 한두 마리겠거니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창밖을 날던 잠자리들 가운데에서도 그런 모습이 여럿 보였다. 잘못 본 것인가 싶어 한참 바라보았지만 분명 예전의 기억과는 달랐다.

잠자리는 어린 시절부터 자주 마주치는 익숙한 곤충이었다. 물속에서 살던 유충이 풀줄기를 타고 올라와 허물을 벗고, 접혀 있던 날개를 펼치고 긴 꼬리를 빼내며 성충으로 우화하는 신기한 모습도 여러 번 지켜보았다. 그래서 어린 잠자리라 꼬리가 짧았다가 나중에 길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돌연변이인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종류인지, 달라진 생태환경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반세기가 넘도록 익숙하게 보아 온 작은 생명에게서 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그 잠자리를 바라보다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시골 아이들은 잠자리를 잡아 ‘잠자리 시집보내기’라는 놀이를 하곤 했다. 긴 꼬리 일부를 떼어내고 가느다란 풀줄기를 끼워 하늘로 날려 보내며 ‘시집 잘 가라’고 빌어 주던 의식이었다. 어린 마음에는 나름 잠자리를 위한 배려라고 여겼던 놀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한 생명에게 얼마나 위험하고 몹쓸 짓이었을까 싶어 미안해진다. 당시에는 들판과 냇가가 놀이터였고, 잠자리와 메뚜기, 개구리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채워 주는 흔한 친구들이었다.

강가 모래밭에는 또 다른 신기한 생명도 있었다. 깔때기처럼 움푹 파인 작은 구덩이에 개미를 떨어뜨리면 모래 속의 개미귀신이 나타나 순식간에 끌고 들어갔다. 도망치려는 개미에게 모래를 휙휙 뿌리는 모습이 어린 눈에는 마냥 신기했다. 훗날 그 개미귀신이 자라 가냘프고 아름다운 명주잠자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전혀 다른 생명으로 알았던 두 모습이 하나의 생애였던 것이다.

그 기억 때문에 지금의 꼬리 짧은 잠자리도 쉽게 단정하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 내가 개미귀신의 다음 생애를 몰랐듯이, 지금 눈앞의 잠자리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생태의 사정이 있을지 모른다. 다만 수십 년 동안 보아 온 자연의 작은 풍경에서 전에 없던 낯섦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에는 달력을 보지 않아도 계절이 어디쯤 와 있는지 알았다. 매미가 목청껏 울면 여름 한복판이었고, 전깃줄에 모여든 제비들이 떼 지어 하늘을 맴돌기 시작하면 여름도 끝을 향해 갔다. 매미 소리가 잦아들 무렵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채웠고, 풀숲에서는 여치와 귀뚜라미 소리가 높아졌다.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지만 밤의 풀숲에서는 어느새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매미는 남은 여름을 붙들어 울고, 귀뚜라미는 다가오는 계절을 먼저 알린다. 제비는 먼 강남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고추잠자리들이 그 빈 하늘을 이어받는다.

계절에는 금을 그어 놓은 경계가 없다. 작은 생명들이 떠나고 나타나며 조금씩 다음 계절을 건네준다. 사람보다 먼저 여름의 끝을 알고, 사람보다 먼저 가을이 오는 길을 열어 주고 있는 셈이다.

창밖의 꼬리 짧은 고추잠자리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저 오래 알고 지낸 자연으로부터 처음 받아본 낯선 질문 하나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질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살았던 작은 생명들의 날갯짓과 울음소리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 소리를 알아듣고 그 변화를 궁금해하는 동안에는 우리도 아직 계절의 순환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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