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이야기

곽보경 / 작가·前 국회정책연구위원
어린왕자를 다시 읽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책장은 이제 낡아서 모서리가 둥글게 닳았다. 밑줄 그은 자리도 그때마다 달라져 있다.

어릴 땐 그냥 동화였다. 별에 사는 꼬마, 장미 한 송이, 이상한 어른들. 여우가 하는 말은 솔직히 지루했다. 길들인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가 싶었다. 중년이 된 지금, 그 한 문장이 자꾸 나를 긁는다. 다시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자리에서 걸린다.

누군가를 길들인다는 건 문장을 완성하는 일과 닮았다. 기다리고, 다듬고, 다시 기다리는 일. 그땐 몰랐다. 사랑도 문장처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냥 휘갈겨 썼다. 의미보다 감정이 앞섰고, 감정보다 이기심이 빨랐다. 지금 다시 쓰면 같은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 그게 나이 든다는 뜻인 것 같다.

장미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그냥 귀찮은 존재로 봤다. 투정 많고, 자꾸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 지금은 안다. 그 허영은 불안의 다른 얼굴이었다는 걸. 화려해 보이려는 인물일수록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쓴 소설 속에도 그런 인물이 몇 있었다. 매일 가시를 세워 스스로를 지키지만, 결국은 누군가 하루 한 번이라도 봐주길 바라는 존재. 그 가시는 방어가 아니라 신호였다. 그걸 알고 나니 내가 쓴 인물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른들 장면도 이제 풍자로만 안 보인다. 왕, 허영쟁이, 술꾼, 사업가. 젊을 땐 꼰대 같다고 넘겼는데, 지금은 내 안에 그들이 다 산다. 나는 글자라는 별을 세며 이게 내 것이라 착각하는 사업가고, 박수 소리를 기다리는 허영쟁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다. 누군가 알아봐주길 기다리는 존재. 작가라는 직업은 그 사실을 매일 다시 확인시켜준다.

길들임은 관계의 은유이자, 쓰는 사람의 방법론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플롯처럼 반복과 차이로 움직인다. 여우는 말한다. 너는 아직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 그 말 속엔 언젠가는 의미를 주고 싶다는 바람이 숨어 있다. 인물도 그렇다. 처음엔 이름 하나일 뿐인데, 쓰면 쓸수록 숨결이 붙는다. 이름을 부르는 횟수만큼 인물은 살아난다. 애착도 결국 기술이다. 기술 없이는 아무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사막과 우물 장면은 늘 뜬금없다 느꼈다. 지금은 거기서 진심을 본다. 사막은 글이 말라붙은 상태다. 아무 말도 안 나올 때, 나는 사막을 걷는다. 며칠이고 걷기만 하는 날도 있다. 그러다 불쑥 우물이 나온다. 갑자기 떠오른 한 문장.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좋은 문장은 멈출 줄 아는 문장에서 나온다. 침묵도 문장의 일부라는 걸 이제는 안다. 여백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그 우물에서 배웠다.

마지막, 어린왕자가 떠나는 장면. 젊을 땐 시적이라 감탄했는데, 지금은 무섭다. 그건 이별이 아니라 회귀다. 몸을 버려야 별로 돌아갈 수 있듯, 원고도 손을 떠나야 비로소 독자의 것이 된다. 완성은 붙잡는 게 아니라 놓아주는 일이었다. 나도 매번 원고를 끝낼 때 그 기분을 느낀다. 기쁘면서도, 한 장면 더 쓰고 싶은 충동. 보내고 나면 다시는 고칠 수 없다는 게 늘 낯설다. 그 낯섦에 익숙해지는 게 작가로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어린왕자는 철학서가 아니라 일기처럼 읽힌다. 네가 네 장미에게 쓴 시간이 장미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 문장은 지금 내게 경고이자 위로다. 빨리 쓰면 가벼워지고, 오래 쓰면 깊어진다. 그래서 이제 문장을 쓸 때마다 묻는다. 이 문장에 내가 얼마나 머물렀는가. 답을 못할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결국 어린왕자는 어른이 된 모두에게 천진함을 회복하는 기술서다. 세상은 어른이 되라 하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아이로 남는 법을 일러준다. 그 방법은 순진해지는 게 아니라, 세계를 다시 한번 믿어보는 용기에 가깝다. 그 용기가 없으면 문장도 마른다.

오늘도 나는 사막 한가운데서 우물의 물을 한 바가지 길어 올린다. 그 물로 문장을 적신다. 그게 나이 들어 다시 읽어야 알게 되는 것이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