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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작아서 몰랐던 것

곽보경 / 작가·前 국회정책연구위원
책장을 넘기다 베인 것인지, 다른 무엇에 스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왼손 엄지손가락 안쪽에 실금 같은 상처가 생겼다. 손톱만 한 크기였다. 그런데도 손을 씻을 때마다, 소매 끝에 스칠 때마다 온몸이 저릿했다. 

별것 아닌 상처 하나가 하루 종일 신경을 붙잡아두는 감각,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두어 달 전에는 가슴이 묵직하게 눌리는 통증이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며칠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조금 아프다고 병원부터 달려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그랬다. 통증이 가시지 않아 뒤늦게 병원을 찾았고, 폐 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수액 줄을 꽂은 채 병실 천장을 올려다보던 밤, 나는 내 몸이 이미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며칠째,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그 신호를 무시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다들 그런 식으로 산다. 몸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데, 일이 먼저다, 다음에 챙기자, 그렇게 미루다가 결국 큰 소리로 앓고 나서야 듣는다.

작은 상처들이었다. 손가락의 생채기, 가슴의 묵직함.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이 하루의 리듬을 흔들었다. 글을 쓰다가도 손끝이 스치면 문장을 놓쳤다. 숨을 깊게 들이쉬다가도 가슴이 걸려 멈춰 섰다. 몸은 그렇게 작은 크기로도 온 존재를 붙잡아 세울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은 어딘가에서 조용히 신호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손가락의 생채기보다 다루기가 어렵다. 약을 바를 자리가 없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설명할 말도 마땅치 않다. 누군가 물어오면 괜찮다고 대답하고, 그 대답을 하는 동안 상처는 한 뼘 더 깊어진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데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그런 얼굴이 되어간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물어 있는 것도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상처 하나쯤은 몸속 어딘가에 품고 지낸다. 대수롭지 않게 넘긴 말 한마디, 참고 삼킨 오해 한 줄, 끝내 흘리지 못한 눈물 한 방울. 그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몸 안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다. 조용히 기다린다. 그러다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불쑥 통증이 되어 되돌아온다. 그런 상처 하나쯤 품지 않은 삶이 있을까.

병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몸에게 묻는 법을 배웠다. 오늘은 어디가 아픈지, 무엇을 참고 있었는지. 대답은 늘 몸이 먼저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듣는 데 서툴렀을 뿐이다. 퇴원하던 날, 손가락의 상처에 연고를 바르며 생각했다. 다 나았다고 억지로 덮어버리면 그 밑에서 다시 곪는다는 것을. 아프면 아프다고, 지금은 조금 힘들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다만 그 자리를 함부로 다루지 않을 때에 한해서다. 마음의 상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손끝의 생채기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듯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도 그만큼의 손길이 필요하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손길이다.

오늘 나는 다시 약을 바른다. 왼손 엄지손가락의 생채기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어느 자리에도. 완전히 나을 날이 언제인지는 모른다. 다만 오늘도 조심스레 나를 어루만진다. 그런 손길 하나쯤, 오늘 스스로에게 건네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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