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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억 농작물 피해의 경고. 포획 너머 ‘생태적 공존’으로 전환하라

최준호 / 전북타임스 대표
- 멧돼지·고라니에 짓밟힌 농가 피눈물, 단순한 무차별 포획은 한계
- 피해보상 현실화와 함께 서식지 보전·스마트 예방 기술을 결합한 ‘지속 가능한 공존’ 모색해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윤준병 의원이 밝힌 최근 4년간 전국 야생동물 농작물 피해액 371억 8,600만 원이라는 수치는 농촌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경고장이다. 특히 전북지역의 경우 2024년 한 해 피해액만 11억 2,0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48.3% 급증하며 도내 농가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땀 흘려 가꾼 사과, 고구마, 벼, 채소가 하룻밤 사이에 멧돼지와 고라니의 발길에 짓밟히는 광경을 목도하는 농민들의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다. 고령화와 영농비 상승으로 이미 한계 상황에 내몰린 농민들에게 야생동물 피해는 농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일격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행정의 대응은 매년 반복되는 사후약방문 수준에 머물렀다. 피해가 발생하면 포획수렵단을 투입해 개체 수를 줄이거나, 농가별로 몇 백만 원 남짓의 전기 울타리 및 포획틀 설치 보조금을 지원하는 단편적 방식이 전부였다. 그러나 멧돼지와 고라니가 전체 피해의 77.7%를 차지하며 피해 규모가 해마다 늘어나는 현실은, 단순히 ‘총을 들어 쏘아 잡는’ 무차별적 포획과 조잡한 물리적 방어선만으로는 이 거대한 생태적 결핍을 막아설 수 없음을 입증한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야생동물들이 왜 산을 내려와 위험을 무릅쓰고 농경지로 침범하는가. 기후변화로 인한 산림 생태계의 먹이 부족, 난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단절, 대형 포식자의 부재로 인한 생태계 불균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농가 피해 대책 역시 단순히 야생동물을 ‘퇴치하고 제거해야 할 유해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일차원적 시각에서 벗어나, 농가의 생존권을 철저히 보호하면서도 생태계의 균형을 복원하는 ‘지속 가능한 공존(Coexistence)’의 방향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공존으로 가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피해보상 제도의 과감한 현실화와 예방 체계의 과학화’다. 현재 지자체의 피해보상금은 산정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실제 손실액의 일부에 불과하며, 지급 절차마저 까다로워 농가에 실질적인 위로가 되지 못한다. 농업재해보험의 야생동물 피해 보상 품목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보상 상한선을 현실화해야 한다. 아울러 일률적인 울타리 지원을 넘어 AI 기반 야생동물 탐지 센서, 경음향 기기, 스마트 방어망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핀셋형 예방 인프라’를 지자체 주도로 집중 구축해야 한다.

두 번째는 ‘야생동물 서식지 보전과 생태통로 확대’라는 근본적 대책이다. 야생동물이 산속에서 충분한 먹이를 얻고 이동할 수 있도록 야생 서식지 내 먹이 식물 식재 및 생태 숲 조성을 확대해야 한다. 도로와 단지 개발로 파괴된 산림축을 연결하는 생태통로를 체계적으로 정비하여 야생동물이 농경지로 내몰리지 않고 자연의 영역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인간의 영역과 야생의 영역 사이에 명확한 완충 지대(Buffer Zone)를 조성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 번째는 ‘체계적인 개체 수 관리와 지역 사회 거버넌스 구축’이다. 무조건적인 멸절이 아닌, 과학적인 생태 조사를 바탕으로 밀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연착륙 전략이 필요하다. 전북도와 14개 시·군, 농민 단체, 환경 및 생태 전문가가 참여하는 ‘야생동물 상생 관리 협의체’를 구성하여 포획 정책과 생태 보전 정책이 조화를 이루도록 종합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농민의 피땀 어린 농작물을 지켜내는 것은 농촌 소멸을 막기 위한 행정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그러나 그 방식이 자연과의 전면전이어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인간의 생존권 보장과 자연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이 선순환하는 ‘지혜로운 공존의 길’을 찾는 것, 이것이 372억 원의 피해가 전북과 우리 사회에 던지는 엄중한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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