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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정책자금인가. 농민 흙쥐어짜는 ‘비정한’ 금융 문턱

최준호 / 전북타임스 대표
농어촌을 지키고 흙과 바다를 터전 삼아 새로이 삶을 개척하려는 청년과 농어민들에게 정책자금은 단순한 액수의 돈이 아니다. 그것은 시들어가는 농어촌의 숨통을 트는 마지막 호흡기이자, 국가가 이들에게 건네는 약속의 손길이다. 정책자금이 존재하는 단 하나의 본질적 이유는 명확하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일반 시중은행의 차가운 담보·신용 평가 기준을 극복하지 못하는 흙수저 농어민들에게 ‘공적 신용’이라는 날개를 달아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장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현실은 이 거창한 정책 목표를 비웃고 있다. 담보가 없고 신용이 부족해 농수산업의 첫발조차 떼지 못하는 이들을 돕겠다며 정책자금을 배정해 놓고, 정작 대출 창구인 농협·수협에 가면 “담보가 없다”, “신용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한다. 이 얼마나 자가당착이며 기이한 역설인가.

최근 공개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의 공적 보증서까지 어렵사리 발급받고도 금융기관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해 공중에 붕 떠버린 정책자금만 최근 5년간 1조 3,000억 원을 넘는다고 한다. 건수로는 1만 건이 넘는 농어민의 꿈이 창구 직원의 냉정한 서류 검토 한 번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공적 보증기관이 “이 농민의 신용은 국가와 공공이 보증하겠다”고 서명까지 해주었는데, 막상 돈을 쥐고 있는 농협이 추가 담보를 요구하거나 자체 신용 등급 미달을 이유로 대출을 거절하는 상식 밖의 행태가 버젓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농협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가. 농민의 피와 땀으로 성장했고, 농어촌 발전과 농민 복지 증진을 최우선 명분으로 삼는 농협이, 일반 시중은행보다 더 가혹한 담보 잣대를 대며 농민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 위험 부담은 조금도 지지 않은 채 수익성이 보장되는 안전한 대출만 골라 취급하겠다는 몸사리기는 농협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심각한 직무유기이자 기만이다. 담보와 신용이 충분한 농민이라면 굳이 복잡한 절차의 정책자금이나 농신보 보증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가장 도움이 절실한 약자부터 외면하는 정책금융이 과연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정부와 관료들의 방관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정책자금 배정 건수만 실적으로 자랑할 뿐, 실제 현장에서 자금이 집행되는지, 어느 단계에서 막히고 있는지 모니터링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금융기관은 농민들이 대출을 거절당하거나 철회한 사유조차 전산에 기록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관리·감독조차 손을 놓고 있었다. ‘농.어민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수조 원의 예산을 세워두고, 정작 집행 창구에서의 거절 잔혹사를 방치한 것은 정책의 실패를 넘어 농어민에 대한 국정의 배신이다.

지금의 기형적인 정책금융 구조를 원점에서 전면 재수술해야 한다.
첫째, 농신보 보증서가 발급된 건에 대해서는 농협 등 취급 금융기관이 부당하게 추가 담보를 요구하거나 대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강제적인 정책 이행 기준을 신설해야 한다. 공적 보증을 무력화하는 금융기관의 입김을 차단해야 한다.

둘째, 대출 거절 사유에 대한 엄격한 전산화와 함께, 정책자금 대출 실행률을 농협의 평가 지표 및 정책 지원과 직접 연계하여 책임을 물어야 한다.

셋째, 영농 의지와 사업 적정성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대출 심사의 전환’이 시급하다. 땅의 가치나 아파트 담보가 아닌, 농민의 땀방울과 미래 가능성을 평가하는 진짜 정책금융으로 돌아가야 한다.

“담보가 없어서 정책자금을 신청했는데, 담보가 없어서 대출을 못 해준다”는 이 기막힌 궤변이 대한민국 농촌에서 언제까지 되풀이되어야 하는가. 농민을 위한 금융이라 스스로를 포장하면서 농민의 사다리를 차버리는 행태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농협은 자신들의 안일함이 농어촌의 미래를 어떻게 뿌리째 흔들고 있는지 직시하고, 지금 당장 차가운 담보의 벽을 허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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