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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를 셈하던 손으로, 햇살을 셈하다

부안 하서면 청년농업인 지철민 씨의 애플망고 농장 ‘망고로움’

비닐 지붕에 걸러진 햇살이 연둣빛 새순 위로 내려앉은 오후. 전북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의 애플망고 농장 ‘망고로움’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잎을 들여다본다. 전북농업기술원 권택 농촌지원과장과 농장의 주인, 청년농업인 지철민(41) 씨다. 잎맥 하나, 가지 하나를 짚어 가는 손길 사이로 이 농장이 걸어온 시간이 천천히 펼쳐졌다.

■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기까지
지 씨는 10년 넘게 손해보험사에서 손해사정 일을 했다. 남의 손실을 숫자로 환산하는 나날은 안정적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의 물음표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회사의 일부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서두르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재배지가 북상하는 아열대 과수에서 가능성을 읽었고, 2023년 휴직계를 내고 충남 금산의 선도농가 ‘뜰애’에서 1년을 배웠다. 이듬해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사업에 선발되며 부안에 뿌리를 내렸다.

■ 기다리지 않기로 한 농부
약 3,000㎡(900평) 하우스에는 레드골드 드레곤과 어윈 810주가 자란다. 눈길을 끄는 건 나무의 나이다. 어린 묘목과 8년생 성목을 일부러 섞어 들였다.
“과수는 시설을 갖춰도 곧바로 수익이 나기 어렵습니다. 나무가 다 크기를 기다리기보다, 제 농장에서 꽃을 올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처음부터 확인하고 싶었어요.”
열매를 일찍 달면 나무의 생장이 더뎌질 수 있다는 걸 그도 안다. 그럼에도 키우는 일과 증명하는 일을 함께 짊어지는 쪽을 택했다. 부안군 아열대과수 도입 시범사업으로 들인 냉난방기와 다겹보온커튼이 그 선택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 두 번째 여름, 600㎏의 대답
첫해 수확은 200㎏ 남짓이었다. 그리고 올여름, 나무들은 600~700㎏으로 대답했다. 열매 대부분이 400g을 넘길 만큼 굵었다. 1㎏ 상자에 두 알이 들면 5만 원, 세 알이면 4만5천 원, 네 알이면 3만5천 원. 공판장에는 내지 않는다.
“물량이 몰리면 값이 흔들리잖아요. 제 손으로 낸 길로만 팔 생각입니다.”

■ 카페는 망고로 가는 오솔길
그 길의 입구는 면 소재지의 작은 카페다. 첫 수확에 맞춰 문을 연 카페는 솔직히 커피로 돈을 버는 곳이 아니다. 망고가 없는 계절엔 매출도 크지 않다. 대신 여름이면 제 망고로 만든 스무디와 라떼가 사람을 부르고, 한 잔에 반한 손님이 망고 상자를 들고 간다. 자연스레 들어온 문의로 체험도 몇 차례 열었고, 예약으로 모인 연락처는 내년 수확 소식을 전할 씨앗이 됐다.

■ 현장에서 건넨 한마디
권택 과장은 다가올 겨울부터 챙겼다.
“열대과수는 겨울 온도를 잡는 것이 곧 경영입니다. 화분 재배라면 추울 때 나무를 한쪽으로 모아 데우는 공간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지요. 기후변화는 위기이지만 준비한 농가에는 기회가 됩니다. 청년농이 뿌리내릴 때까지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 망고처럼, 천천히 그러나 깊게
지 씨의 다음 목표는 내년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고, 하우스를 한 동 더 세워 두 번째 농장을 꾸리는 것이다. 망고는 서둘러 따면 끝내 제맛을 내지 못한다. 나무 위에서 충분히 익어야 비로소 향이 깊어진다. 도시의 책상을 떠나 흙 위에 선 한 사람의 인생도 지금, 그렇게 익어 가고 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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