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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맨손으로 시작한 땅, 아들이 키운다

익산 청년농업인 이지훈 씨가 걸어온 열네 해의 농사
사진촬영: 전북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홍보팀

시월의 익산 들녘은 비워지는 중이다. 벼가 베어진 자리에 그루터기만 남고, 그 빈자리에 다시 밀이 들어설 것이다. 농사는 비우고 채우는 일을 되풀이하며 이어진다. 이지훈(1989년생) 씨의 농사도 그렇게 한 사람의 빈손에서 시작됐다.

그는 15만 평 가까운 논밭에서 쌀과 논콩, 밀, 조사료를 기르고 한우 150여 마리를 키운다. 송아지를 받아 출하할 때까지 직접 키우는 일관사육이다. 하루는 축사에서 소의 상태를 살피는 일로 시작해 논과 밭으로 이어진다.

봄에는 육묘와 파종, 이앙이 몰리고 여름에는 방제가, 가을에는 벼와 콩 수확과 조사료 작업이 겹친다. 벼 육묘와 드론 방제, 퇴비 유통까지 맡다 보니 이제는 농기계를 모는 일만큼 어느 논에 어떤 장비와 사람을 먼저 보낼지 정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그는 "농업인의 하루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아니라 오늘 할 일을 얼마나 책임 있게 마무리했느냐로 결정된다"고 했다.

■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그의 아버지는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이 농사를 시작했다. 작고 낡은 농기계로 한 해 한 해를 버텼다.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던 해, 그 아버지가 농기계 사고로 손가락을 잃었다. 평생 들에서 일해 온 아버지가 다친 모습은 어린 아들에게 오래 남았다.

회복을 마친 부모는 아들에게 농업을 권했다. 다른 길을 찾으라고 말할 법한 순간이었다. 아들은 그 권유를 받아들였다. 한국농수산대학교 대가축학과에서 한우를 공부하고 2012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다시 장비를 들였고, 들녘은 그때부터 넓어졌다.

농사를 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짧게 "없다"고 답했다. "직장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 하잖아요. 농사는 자유 속에서 스스로 책임지는 일이에요. 미뤘다가 몇 배로 되돌아오는 걸 겪으면서 배우는 거죠."

■ 풀이 어릴 때
그가 열네 해 동안 몸으로 익힌 것은 '때'다. 논에 난 풀은 어리고 땅이 젖어 있을 때 손끝으로도 뽑힌다. 덥다고, 바쁘다고 며칠 미루면 땅이 마르고 뿌리는 깊어진다. 약제 한 통이면 될 일이 서너 통이 되고, 끝내 예초기를 들어야 한다.

"일을 미룬다고 그 일이 사라지지 않아요. 농사에서 가장 비싼 건 농기계값이 아니라 때를 놓친 대가예요."

그 말은 잡초에만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미뤄 둔 자리에는 대개 더 깊은 뿌리가 내린다. 그는 그 이치를 들에서 배웠고, 이제는 경영에도 그대로 옮긴다. 바꿔야 할 때 결정하고, 투자할 때 따져 보고, 준비할 때 먼저 움직인다.

그래도 사람의 부지런함만으로 닿지 않는 곳이 있다. 가뭄 끝에 쏟아지는 집중호우, 해마다 낯설어지는 병해충이다. "가장 두려운 건 힘든 일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도 결실을 못 볼 수 있다는 거예요."

■ 혼자가 아닌 농사
그의 농사는 네 갈래로 나뉘어 있다. 논콩은 뿌리깊은영농조합법인, 밀과 조사료는 성농영농조합법인, 퇴비 유통은 익산시퇴비유통영농조합법인, 드론 방제는 익산시4-H항공방제단영농조합법인이 맡는다. 이 가운데 세 곳의 대표가 그다. 여러 작목을 함께 하다 보니 선택과 집중이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대신 한 갈래가 흔들릴 때 다른 갈래가 버팀목이 된다.

전북특별자치도4-H연합회 회장을 지낼 때도 그는 사람을 모으는 일에 마음을 썼다. 구기 종목 위주의 체육대회를 열고, 지역별 리그전으로 치르는 e스포츠 대회를 처음 만들었다. 회원들은 그 대회를 가장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사람은 만나야 하고, 같이 해야 해요. 회원들이 바란 건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 함께 어울릴 자리였어요."

■ 아버지에게 돌려드릴 시간
농장의 주인은 아직 아버지다. 그는 웃으며 "아직도 용돈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 장면은 이미 그리고 있다. 다른 곳에서 일하는 동생이 농장 합류를 고민하고 있다. 동생이 들어오면 가족농을 법인으로 바꾸고, 해마다 필요한 농지와 장비를 법인 이름으로 차근차근 마련할 생각이다. 가공과 유통, 체험을 잇는 6차 산업과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직거래도 그 그림 안에 있다. 기후 탓에 모양은 덜 고와도 맛과 품질에는 문제없는 농산물을, 그 사정을 숨김없이 알리고 제값에 내놓는 길도 찾고 있다.

농사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그가 건네는 말은 담담하지만 단호하다. "시골 가서 농사나 짓자"는 말이 통하던 시절은 끝났다고 했다. 재배 기술에 경영과 회계, 농기계와 유통, 정책까지 알아야 하고, 지원이 없어도 버틸 수 있는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이다. 농촌에 들어오는 것보다 오래 남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그는 회원들 곁에서 지켜봤다.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아버지의 휴식이다. "아버지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셨어요.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으니, 이제는 운동도 하시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어요."

빈손으로 시작한 아버지의 들녘은 이제 아들의 손에서 넓어지고, 머지않아 형제의 손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버지가 맨손으로 일군 땅을 아들은 지금 다음 사람이 설 자리로 고르고 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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