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의 개방 압력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권력을 잡은 흥선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단행했다.
그는 폐허로 남아 있던 법궁인 경복궁을 지으면서 조선의 부흥을 꿈꿨다.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가 묻힌 정릉(貞陵) 인근의 흥천사(興天寺)도 대원군이 관심을 가진 곳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의 말사인 흥천사는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된 원찰(願刹)이다. 조선왕조가 태동하고 5년이 지난 1397년 준공됐으며, 당시에는 170여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다.
창건됐을 무렵 흥천사는 정릉의 본래 위치인 서울 중구 정동에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는 흥천사가 16차례 나온다. 임금이 흥천사를 찾아 장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신하를 보내 재앙을 없애는 법회를 열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때 왕실이 발원해 최고의 기술자들이 제작한 동종은 정동에 있는 덕수궁에 홀로 남아 있다.
억불숭유 정책 속에서도 흥천사는 도성 안에 있는 사찰로서 번성했다. 그러나 성종 대부터 지원이 줄어들면서 퇴락의 길을 걸었고, 1504년과 1510년 거듭 화재가 일어나 전각이 모두 소실됐다.
그러다 1794년 현재 자리에 중창됐고, 철종과 고종 치세인 19세기 중반에 현재의 건물들이 세워졌다.
흥천사는 대규모 사찰과는 달리 정문에 해당하는 일주문이 없고, 계단을 오르면 바로 대방(大房, 등록문화재 제583호)이 나타난다.
대방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H자 형태로, 양쪽 끝부분에는 누마루가 있다. 또 곳곳에 각종 편액과 글귀를 적은 기다란 목판인 주련이 걸려 있다. 안에는 불상과 불화가 있지만, 바닥에는 장판이 깔려 있다.
법당 겸 숙소이자 부엌의 기능까지 갖춘 대방은 사찰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건물이다. 복합적이고 기능적인 구조는 근대 건축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방 뒤쪽으로는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극락보전(極樂寶殿)과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두 건물 모두 정면 3칸 규모로, 1850년대 완공됐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을 봉안한 극락보전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보다 더 밝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흥천사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마지막 황비인 순정효황후와 얽힌 사연도 있다. 극락보전에는 영친왕이 5세에 쓴 현판이 있고, 순정효황후는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피난 생활을 했다고 전한다.
한편 흥천사의 독특한 건축물인 대방은 오는 3월부터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해체 보수 작업에 들어간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내년 말까지는 온전한 건물을 볼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