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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시장 이건식) 담당부서인 문화홍보축제실(실장 김추식)는 지난12일 백제 패망 후 나라를 되찾고자 백제의 왕자 부여풍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을 벌였던 김제피성(김제 성산)의 흔적을 밝히는 학술발굴조사가 본격적인 착수에 들어감에 따라, 성산에 깃든 토지신에게 제를 올리는 개토제가 김제 성산공원일원에서 열렸다.
성산공원은 성산을 중심으로 국가사적지인 김제 관아와 향교, 용암서원과 벽성서원, 그리고 김제시청과 김제문화예술회관등이 위치하여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김제시민들로부터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곳은 김제의 주성(主城)으로서 백제시대로부터의 중요한 성곽이었다는 문헌자료와 백제패망 후 왜국에 가있던 백제의 왕자 부여풍을 중심으로 나라를 되찾고자 벌였던 백제부흥운동 당시 임시수도로서 기능을 하였다는 추정만 있었을 뿐 이렇다 할 발굴조사는 한번도 이루어 진적이 없었다.
특히 김제시는 국가공모사업으로 이에 대한 발굴조사비용 국비 8천만원을 확보하여 금년 5월12일부터 9월까지 전라문화유산 연구원에서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추진하게 되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인 주류성과 피성의 위치가 충남의 여러 지역과 전북의 부안, 김제 등 그간의 이설이 많았으나 이번 학술발굴조사를 계기로 주류성과 피성의 위치가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라는 학계의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이곳 김제 성산은 백제 부흥운동 당시 백제의 왕자 부여풍이 주류성에서 피성(성산공원)으로 천도 하게 된 이유가 “주류성(부안 우금산성)은 오직 전쟁을 막아낼 장소일 뿐”이라며 김제의 피성은 “삼한중에 가장 풍요로운 곳이며, 의식의 근원”이라고 높이 평가하여 항쟁의 근거지를 옮긴바 있다.
이에 김제시 문화홍보축제실 김추식실장은 “백제 부흥운동이 백제 왕조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백제사의 종점을 백제 부흥운동이 막을 내린 시점으로 보아야 하며, 그간 이설이 많았던 주류성과 피성의 위치가 부안과 김제에 힘이 실리고 있는 실정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문화권의 여러 유적지와 함께 김제의 백제시대 유적 또한 추가 등재하는 방안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제=김정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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