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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열 "내남편 고를 때보다 더고민"했단다

 "내 남편 결정할 때보다 더 많이 생각한 거 같음." (네이버 아이디 'seoc****')
    "내 남편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고민하는지 ㅠㅠ"(네이버 아이디 'brea****')
    드라마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냐를 놓고 쏟아진 수만개의 댓글 중 일부다. 폭소를 자아내는 동시에 대중문화의 파워와 영향력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반응이다.

 

    tvN '응답하라 1988'이 종영을 2회 앞두고 인터넷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팬들은 인터넷에서의 갑론을박은 물론이고, 급기야 지난 12일에는 드라마의 결혼식이 촬영되고 있다는 스포가 퍼지자 직접 발로 뛰어 촬영현장까지 들이닥치는 '참을 수 없는 열의'를 보였다.
    일부 매체는 제작진의 '법적 대응' 운운에도 부지런히 스포를 실어날랐고, 과잉 경쟁에 따른 오보가 포털사이트 메인을 버젓이 장식하기도 했다. 심지어 국회의원실까지 가세해 이 드라마의 스포를 공개하는 트윗을 날렸다.

    이쯤되면 광풍이다. 체감 시청률이 50%는 훌쩍 넘어서는 느낌이다.

    '모래시계'가 '귀가시계'였고, '허준'이 방송될 때 길거리에 개도 안 지나다녔다는 '그때 그시절'의 추억을 다시는 못 접하나 했더니 '웬열' 어쩌면 그때보다 더한 느낌이다. 시청자의 적극적이고 열광적인 반응이 아날로그 시대의 열기를 가볍게 뛰어넘는 양상이다.

    '올인' 때도, '대장금' 때도 시청자들은 결말을 두고 열병에 휩싸였다. 두 드라마는 어차피 결말이 예상 가능하기도 했고, 공개한다고 해서 대세에 별 지장이 없어 제작진은 마지막 장면 혹은 그 언저리 장면을 찍을 때 촬영현장을 아예 언론에 공개했다.

 

    그런데 '응답하라' 시리즈는 좀 다르다.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냐가 마지막회를 장식해야하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007작전처럼 내용을 비밀에 부쳐놓아야 한다.

    '응답하라 1997' 때도, '응답하라 1994' 때도 시청자들은 결말이 궁금해 오금이 저렸다. 그런데 지금만큼은 아니다. '응답하라 1988'이 모든 면에서 앞서 두 작품을 능가하는 재미를 주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마디로 '광기' 수준이다. 다만 '유쾌한 광기'다.

    흙수저론과 헬조선이라는 자조가 우리 사회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2015년이 지나고 새해가 열린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서 이처럼 심장을 쫄깃거리게 하고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재미를 주는, 그러면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공통의 화젯거리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모습은 정겹고 재미있다.

    과잉 양상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 이후로 대중을 하나로 모아 유쾌한 열병에 휩싸이게 하는 '응팔 광기'는 지켜보는 것 자체가 절로 웃음을 머금게 하고 잠시나마 모든 시름을 잊게 한다.

    누리꾼들은 '고마운 동료 누리꾼'이 찍은 사진과 사실인지 아닌지 모를 해설과 추측을 LTE급으로 퍼 나르며 자신들을 '달뜨게' 한 열병을 즐기고 있다.

 

    덕선의 남편이 누구냐를 놓고 쏟아지는 댓글 중에는 "에라이 그냥 셋이서 살아. 답답해", "결혼해서 살아봐라. 그놈이 그놈이다"까지 나올 정도. 기사나 스포보다 댓글이 훨씬 더 재미있는 형국이다. 이미 남편이 누구냐보다 지금의 갑론을박 공방을 누리꾼들이 하나의 오락으로 즐겁게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의 드라마가 폭넓은 대중에게 이토록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반갑고 고맙다. 시청률에 대한 타협이라며 아침저녁으로 해괴한 스토리의 막장 드라마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무해하고 청정한 드라마가 여전히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참견하고 싶은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제작진은 종영을 앞두고 '모를 권리를 지켜달라'며 스포를 자제해줄 것을 부탁도 하고 읍소도 했다. 심지어 법적 액션을 운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에너제틱한 한국의 드라마 시청자들을 막는 것은 안타깝게도(?) 불가능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광기는 남은 2회의 시청률로 고스란히 연결될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물었는데, '응답하라 1988'이 이 추운 겨울 우리를 다시 한번 '뜨거운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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