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하나면 세상 모든 것이 손안에 들어오는 시대가 되었다.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되고, 은행 창구에 가지 않아도 되며, 보고 싶은 영화와 음악은 몇 번의 터치만으로 재생된다. 인공지능은 사람 대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인간의 기억까지 대신 저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전 세대가 상상하지 못했던 가장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꺼내 들고, 종이책의 냄새를 맡으며, 낡은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잡음 섞인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오래된 골목길과 재래시장을 찾아가고,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사진첩을 다시 펼쳐 든다. 느리고 불편한 것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디지털은 효율과 속도를 제공하지만, 아날로그는 인간의 감성을 깨우기 때문일 것이다.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온 손편지 몇 통을 꺼내 읽다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했던 형제들의 안부, 군대 간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 이제는 세상을 떠난 이의 마지막 글씨가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와 눌러쓴 흔적 속에는 그날의 마음과 체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잠시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사람과 감정들이 한순간에 되살아난다. 반면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천 개의 문자 메시지는 편리하지만 오래 마음속에 머물지 않는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에는 수만 장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지만 정작 다시 꺼내 보는 사진은 많지 않다. 그러나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잊고 지냈던 얼굴과 시간들이 살아난다. 사진은 기록이지만, 사진첩은 추억이다.
인간은 원래 감각적인 존재이다.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시간을 들여 기다리면서 기억을 만든다. 디지털은 시간을 압축하지만, 아날로그는 시간을 축적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편리한 시대를 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것들을 그리워한다.
공중전화 앞에서 동전을 손에 쥐고 순서를 기다리던 기억, 늘어진 카세트테이프를 연필로 감아 돌리던 모습, 연탄난로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던 귤 냄새는 아련한 과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불러낸다. 그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그 시절 함께 웃고 울었던 사람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체온을 나누었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기술은 앞으로 더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가상공간은 현실과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람은 결국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한다. 손편지 한 장, 오래된 사진첩, 누군가와 마주 앉아 나누는 따뜻한 차 한 잔이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위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지털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여전히 아날로그의 몫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오래된 것들 앞에서 문득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그 속에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배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