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사용하는 언어, 아이들 간 교우관계나 학급분위기, 교실환경이나 학교문화 등이 다 잠재적 교육과정에 포함된다. 이런 개념이 등장한 것은, 아이들이 단지 교과서를 통해서만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교육에서는 그러한 요소들이 아이들에게 끼칠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 성인들은 물론 아이들 역시 교과서로는 담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정보와 지식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다. 성인들은 그 무수한 정보들을 취사선택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가진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어떤 교육적 개입이 없다면 쉽게 편향에 빠지거나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윤석열·김건희 범죄혐의들은, 아이들이 배워온 교과서와 너무 다른 현실, 너무 다른 세상을 아이들에게 날 것으로 쏟아내고 있다. 보통 사람의 범죄행위들도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고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물며 다른 사람도 아닌 한 나라 대통령 부부의 상상초월 범죄행각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특히 아이들 삶과 직결된 국가교육위원장과 대통령 부인이었던 김건희 사이에 뇌물이 오고 간 정황은 아이들에게는 더 특별한 일로 다가갈 수 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아이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의견을 내고 토론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이들이 혹시나 갖게 될 잘못된 정보나 판단들이 교정되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속에서 혼자 혹은 소수 또래들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교사의 생각을 주입하지 않되 사회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를 학교에서 다뤄야 한다는 보이텔스바흐 합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광범위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이런 사회적 쟁점들을 다루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고, 심지어 법적 제재대상으로 삼는 일이 벌어져 왔다.
200명 넘는 또래나 선·후배벌 학생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더 큰 충격과 상처가 되었을 세월호 사건 때, 학교에서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계기수업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교사는 징계에 회부하겠다는 공문을 뿌린 곳이 대한민국 교육부다. 대통령 탄핵선고 시청을 금지하거나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교를 옭죄었던 것이 대한민국 교육현실이다.
학교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세월호 사건이나 대통령 탄핵을 아이들이 모를 수 있나? 없던 일이 되나? 오히려 학교에서 교육적으로 다루어주지 않음으로써 아이들은 그 사건이나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에 빠지고, 때론 잘못된 결론을 스스로 내리게 된다. 이런 커다란 사회적 쟁점일수록 오히려 학교에서 교육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시민성을 기르는 교육이며, 정치적 문제를 교육적으로 다루는 일이다.
그래야 아이들이 사회문제를 객관화할 줄 알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다. 일부 유튜버 주장, 부모의 생각, 선생님의 생각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갖게 된다. 실시간 생중계 매체가 아이들 손 안에 들려있는 세상이다. 정보노출 빈도가 높을수록 아이들에게는 대화와 토론, 공론화 경험이 더 많이 요구된다.
아이들이 살아갈 삶에서 이런 교육적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수학문제 몇 개 더 풀거나, 영어단어 몇 개 더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또한 그런 교육적 경험 속에서 리박스쿨과 같은 극우적 주장이나 사고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을 힘, 주체적 판단력이 생겨날 수 있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대통령 부부였고, 대통령이 갖는 상징성과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아이들이 차분하지만,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안전한 교육적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우리 학교는 마치 완전히 세상과 동떨어진 섬처럼 존재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그런 섬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존재하기’를 요구받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신뢰와 존중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교육공동체 내 신뢰가 깨지는 요인 중 하나다. 아이들은 교과서 지식에는 유능하지만, 세상일에는 무능한 존재로 자라나기를 강요받는 셈이다. 아이들을 교과서에 가두려는 사회가 아이들을 피해자로 만든다.
이 모든 일들을 합리화하는 근거가 ‘교육의 정치중립성’ 논리다. 그러나 교육의 정치중립성은 교사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주입하지 말라는 것이지, 정치적 문제를 다루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사회쟁점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새 정부는 이를 막고 있는 법적 장치인 교사 정치기본권 박탈 상태 해소에 빨리 나서야 한다.
우리 사회는 윤석열·김건희 류 범죄행각이 재발되지 않는 세상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안전판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제2의 윤석열·김건희를 만날 가능성이 줄어든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이미 현실이 된 지금, 아이들이 그로부터 삶의 지혜와 교훈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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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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