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현재의 행복도와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돈을 곧 행복으로 보는 물질주의적 행복론을 믿고 있다. 그래서 전 인생을 돈을 버는데 갈아넣지만 (설사 돈을 버는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행복은 더 멀어져만 간다. 한국인들이 행복을 돈에서 찾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공동체의 해체로 인한 인간관계 악화다.
한국에서는 개인 간 생존경쟁과 서열경쟁이 전 사회에 일반화된 결과 가족관계도 악화되었다. 2021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한국을 포함하는 17개 선진국의 성인 1만 9000명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가가 ‘가족’을 1위로 꼽았지만, 오직 한국만 ‘물질적 풍요’를 1위로 꼽았다. 이런 결과는 한국의 가족 내 인간관계가 크게 악화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개인 간 생존경쟁과 서열경쟁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된 한국 부모들은 자식이 경쟁에서 낙오할 것을 두려워하여 어릴 때부터 자녀에 대한 사랑을 핑계로 공부를 강요 – 이것은 본질적으로 돈을 위한 인생을 살라고 강요하는 것 - 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들은 자식을 포함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능력을 상실하고 그들의 사랑은 가짜 사랑인 조건부 사랑으로 변질된다. 부모한테 사랑받지 못한 자녀들은 마음의 상처를 떠안게 되고 심한 경우 부모를 미워한다. 한국에서 부모-자식 관계가 양호한 가정이 빠른 속도로 줄어든 것은 한국 사회가 부모들로부터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나 정신건강을 박탈해서다.
가정에서 생활하고 성장할 때조차 행복하지 않았던 젊은이들은 학교생활을 비롯한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홀로 고립된 채 잔혹한 약육강식의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성공을 위해 눈물겨운 전투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그들이 이런 불행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행복하지 않았고 현재도 행복하지 않은 데다, 미래에도 행복해질 것 같지 않다면 왜 결혼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할까? 현재가 행복하지 않은 청년들은 자식을 키울 마음의 여유가 없고 자식이 자기처럼 불행한 삶을 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들은 자식을 낳지 않음으로써 불행과 고통을 자기 대에서 끊어버리려 할 것이다. 자신의 현재 삶에는 만족한다 하더라도 미래를 비관하는 청년들은 앞으로 더 끔찍해질 세상에서 자식이 태어나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부모로서 자식에게 못할 짓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들은 자식을 사랑하기에 출산을 거부한다.
한국인들이 물질적 풍요나 돈을 최고로 치면서 그것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행복은 물론이고 자살과 출산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많은 연구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듯이 행복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개인 간 생존경쟁과 서열경쟁으로 모든 공동체가 붕괴되고 인간관계가 급속하게 악화된 결과, 한국인들은 인간관계나 공동체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을 가능성을 상실했고, 그런 행복을 추구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했다. 그 결과 돈을 많이 벌어서 마음껏 쾌락을 누리거나 서열상승에 성공해 잘난 체하면서 살겠다는 쾌락주의 행복론과 서열주의 행복론(나르시시즘적 행복론)을 맹목적으로 믿으면서 살아간다.
개인적 부를 위해 승자독식의 오징어게임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행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파괴한다. 9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인들의 정신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었고 지금도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OECD는 한국에서 자살률과 정신질환 환자가 유독 증가하는 것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김정희원, 『공정 이후의 세계』, 2022, 창비, 17쪽). 한국인들의 정신건강 악화는 그 규모와 속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1년에 한국은 OECD국가 중에서 우울증 1위(36.8%), 불안증상 4위(29.5%)를 차지했다. 2022년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우울증 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그중 20대 여성의 수가 가장 많다(사단법인 기본사회 편집위원회, 『기본사회가 꿈꾸는 세상』, 2024, 밀알, 85쪽). 정신건강이 급속히 악화된다는 것은 당연히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과 통한다. (행복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를 참고하라.) 정신건강은 행복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평가되지만 국민의 행복순위는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50위권이고 OECD국가 중에서 33위로서 최하위권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세계 최고 수준의 정신병 유병률과 증가율은 한국인들이 지금과 같은 삶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 상태를 방치한다면 한국은 결단코 멸망할 것이다. 인간이 병들거나 파괴되면 백약이 무효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멸망에서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답은 근본적인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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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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